[1일1쓰기] Day 42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시인에 대해서는 알고지낸지 10년은 됐지만 그의 시나 산문은 읽어본적이 없다.

그러다가 서점에서 산문 섹션에 가게 되었다.

뭔가 제목이 끌리길래 봤는데 마침 그게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이었다.

사실 뭐 류시화 시인의 책이라고 해서 샀던건 전혀 아니었고, 목차와 몇 문장을 읽어봤는데 느낌이 오길래(!)

그냥 구매를 하게되었는데

그날 구매한 3권의 책 모두(물론 1권은 아직 읽지 않았다) 굉장히 잘 구매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아무도 추천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거라서

뭔가 모래속에서 진주를 찾은 느낌이랄까


뜻밖의 곳에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다 읽지 않아서 필사는 하지 못했지만, 류시화 시인의 태도와 아무문제 아니라는듯의 말투가 나와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ㅎ.ㅎ)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고통은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예전에 한참 다니던 스터디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연설을 외운적이 있다. (외우려고 노력을 했던거지만)

그 때 나온 문장중 가장 유명한 문장이 ‘what is here to teach me?’ 였다.

내가 20살때부터 들어온 문장이라 그런가 나에게는 사실 너무나도 cliche한 문장이고

아직까지도 저 문장을 보면 깨달음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그치만 모든 고난의 순간에 일맥상통하는 문장은 맞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걸까, 나에게 무슨 의미를 찾으라고 하는걸까 라는 자세.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경험하고 난 후에

나는 스스로가 끊임없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1년는 시간을 억울해하며 살았다.

나를 이 지경까지 몰고간 모든 상황과

도망갔던 상대의 비겁함.

나는 도의적 책임을 다했음에도 결국에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인정받고 싶었던것 같다.

아니,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난 최선을 다했다고.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처럼 할 사람이 몇 없다는걸 안다.



근데…

누가 뭐랬나?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이러나 저러나 상황은 펼쳐졌고, 시간은 흘러갔고,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펼쳐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평생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외부요인을 탓하는 것

혹은

받아들이는 것, 흘려보내는 것이다.


혹자는 정신승리를 화려하게 말한다고 하겠지만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정신승리를 안하면 스스로가 괴로워 죽겠으니 다들 그러고 살지 않나?

합리화 하면서 , 정신승리 하면서.

‘어짜피 벌어질 일이었어~~’ 라면서.



법륜스님이 그러셨다. (참고로 난 무교다….)

마음에 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번

‘손에 불이 있어 너무 뜨거워요, 손이 타들어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답이 뭐겠나?

‘놓으세요 그냥’

그럼 또 답한다

‘어떻게 놓나요. 제가 놓으면 이게 어쩌구 저게 어쩌구’

결국 아무도 놓지 말라고 한적도 없는 불을 놓지 않는건 스스로라는 것이다.

불이 충분히 뜨겁지 않거나, 뜨거움에도 놓고 싶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


모든것은 마음먹기 달려있고 이 세상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하는것은 놓아주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다.

‘내 마음대로 할거야’ 라고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하는게 가끔보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것 같다


‘내 마음’ 만큼 마음대로 안되는게 있을까?

‘내 마음’만큼 유치한게 있을까?



세상 사람마음만큼 유치하기 짝이 없는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서운한 마음, 그 유치한 마음이 애시당초 들지 않게

노력을 부던히도 하는 편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유치한걸 입밖으로 낸다는것 자체가 스스로가 쪼잔해보이고

그러면 말을 못해 또 답답하고

이 모든게 돌고도는데

그 시작은 모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거는 좀 쿨하면 안되냐?’

‘이런거 가지고 삐져야겠냐? 서운해야겠냐?’ 하는 머리와 마음의 끊임없는 싸움.




여튼간,

파도가 후려친다면 대운이 바뀌는 순간이 온 것이다.

후려침을 당하는 순간은 진짜 미친듯이 아프겠지만.. 죽을것 같겠지만, 그게 날 죽이지 못했다면 새로운 삶을 살 준비를 도와준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난 그렇게 믿고 살련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데 뭐가 마법처럼 뾰료룡 되지는 않겠지)

니체의 말처럼 날 죽이지 못한것들은 날 강하게 만들테니까.

(정말 가끔은 죽는게 속편하겠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여태까지 나는 추락했다가 떨어져 모든 뼈가 산산조각 났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다행이게도(혹은 안타깝게도) 죽지는 않았다.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의미를 찾을 정신도 없었다. 굳이 합리화하면서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이제는 할만큼 했고, 욕하는것도 지겹다.


욕하는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걸 이제서야 알았다.

난 원체 에너지가 좀 많은 사람이라 이곳저곳에 에너지를 좀 잘 쓰는 사람인데

작년부터 그것마저 너무 부질없고 힘들다.

그래서 sns도 끊고, 정치도 잘 안보려고 하고 했는데

나의 가장 큰 에너지 소비는 이 원망과 증오에서 나왔던것 같다.

똑같은 말을 하는 나도, 똑같은 말을 듣는 누군가도.. 힘들다


지인중에 정말 만나기만하면 회사 팀장 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 사람을 만나는게 반가웠다면

이제는 만날때마다 기승전-팀장욕 으로 가다보니 이제는 만나는게 즐겁지가 않다.

욕받이가 된 느낌이랄까


나도 혹여 그런 사람이 될까 스스로 돌아보고 조심하려고 한다.

근데 여태까지 1년을 그래왔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하려고 한다.

놓아줌.

보내줌.

내려놓음.

그 상황을 겪으면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아직도 노력중이다.


이게 바로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하고 있다는 거겠지

탄생이라는게 밖에서 보면 마냥 쉬이 아름답기만 하겠지만

탄생이라는것이 ‘태어나는’ 주체에게는 어마무시하게 두려운 일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굉음을 내면서 무너져 내리는 거니까.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 데미안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친절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가 알지못하는 각자의 상처를 저마다 갖고 있으니까.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시화 시인의 책에 좋은 구절이 많았다.

시리즈로 내가 좋았던 문구들을 적어가면서 독후감 시리즈를 써볼까나

사실 문장도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가지고 내 생각 쓰는것도 한 재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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